horizon vertical and inclination

 

 

 

 

해수면의 상승이 대륙의 빙하가 녹음으로 몇 mm, 몇 cm 등 높아진다는 얘기를 접하고 있는 와중에 그 수치가 전 지구의 바다 면적의 높이에 관한 것이면, 주변의 여느 그릇과 비교할 수 없음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몇 cm의 증가는 실로 엄청난 양이 된다는 것이며 나아가 그간 계속되는 산악과 대륙 지반의 흙의 일부가 바다로 이동해 가면서 바다에 잠겨 근거리 바다의 해수면 바닥의 높이 또한 높아진 가운데, 태풍 허리케인 등이 불면 그 파급력은 이전에 비해 증가하게 됨을 가늠하게 됩니다.  바람의 세기도 지구 대기권 내의 면적 상승과 대기 밖과의 밀고 당김의 여파에 따라 그러함을 가늠해 보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여러 지역의 침수 소식의 우려 가운데, 주변서 해볼 수 있는 방책을 생각해보며 좀 더 관련 부분에 대해 다루어 봅니다.

 

적지 않은 콘크리트 등의 기반 시설의 최상 층 부위에 방수처리와 노후에 따른 피해, 걱정 등도 적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며, 각종 건물의 최상층 부위의 방수 관련 초기 시공 시에 수평면 처리를 약간의 기울기를 주어 시공하여 표면 방수 처리를 넘어 좀더 중장기적으로 적합한 모습을 이루면 좀 더 지속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쪽은 기존의 일반적인 수평처리 모습이고, 다른 쪽은 기울기를 준 모습으로 이해를 위해 좀 과장되게 처리해 봤습니다.


이와 같이 기본적인 상층부 표면을 적절한 기울기 시공을 이루면 중장기적으로도 빗물 등의 수 처리 관련해 방수, 노후 등을 대비하여 좀 더 지속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아울러 창가 등 주변 다른 부분도 최초 시공 시, 기울기를 좀 주면 어떠한가 싶습니다.

 

위는 옆의 단면, 아래 왼쪽은 위에서 보는 평면, 아래 오른쪽은 정면의 단면, 점선은 길이 차이 가능 부분.

 

각각 기울기 각도는 알맞게 조정하여 이러한 구조를 시공 시, 완공 이후 적용을 통해 최상층 부위에 적용해 놓으면 어떠한가 싶습니다. 평지 면이 필요하면 해당 부위에 수평 구조물을 별도로 설치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사항을 좀 더 표현해 봅니다. 위의 모습은 단면 모습으로 면적에 알맞게 표면 기울기 등을 조성하고, 수평면 필요 시에 이동 가능한 수평구조물을 놓고 경우에 따라 전동 펌프 등을 필요 시 설치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글쎄요 싶습니다만 물을 저장해 놓을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외관 모습을 표현한 컨셉으로, 면적에 알맞게 균등 분할하거나 일괄 적용하여 비가 적지 않은 곳에 지어지는 빌딩, 아파트, 콘도, 빌라, 주택 등의 최상층을 평면으로 유지하는 곳에 적용하면 어떠한가 싶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직접 행하거나 장치를 통해 해당 표면을 직접 밀고 닦는 등 수분 제거의 접근을 통해 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보입니다.

 

수평과 수직은 삶에 일반입니다. 이에 기초하여 근간을 이루는 모습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조금 흐트러짐도 어색하고 불쾌하게 여기며 때로 병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고 합니다만 그런 사람은 치료를 좀 받아야 한다고 하며, 일반적으로는 수평과 수직 등과 같은 체계 내에서 적절한 융통성의 범주 내에서 살아갑니다.

보이며 측량할 수 있는 모습을 넘어, 생각과 관념 등은 딱히 잴 수 없음에도 나름의 모습으로 수평과 수직과 같은 내면의 무엇을 지니며 무언가를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치관, 지식 등이 그와 같을 것입니다.

 

물론 나름 과거에 비해 많이 알게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음에도 이는 방을 벗어나면 거실, 마당을 포함한 집이라는 관점에 의해 여전히 상대적으로 기존의 작음의 위치로부터 조금 더 나아간 모습에 놓이게 됨과 같습니다. 교만에 주의해야 한다는 선친들의 권고의 이유일 것입니다.

시간과 지식의 발전으로 인간이 이루게 된 것이 적지 않음에도 그 만큼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르기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에 가는 방법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직접 탐험하고 도전하여 어느 원하는 곳에 개척하며 나아가야 했다면, 근래는 방편과 방법들이 존재하므로 대체로 그냥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음에도 와중에 놓인 수 많은 것에 관심과 유래를 헤아려 보며 나아간다면 모르는 것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여건에 따라 누군가 에게는 모르는 것이 많기에 교만해선 안 된다고, 누군가는 알기에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가져도 됨이 모두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판단도 그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고차원적인 배움에 들어선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하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하게 대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이중 잣대라고 볼 수는 없고 합리적인 잣대라고 여김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나아가 세상은 이런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가늠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정확한 수평 내지는 수직과 같은 모습을 유지함은 어떤 영역에선 매우 중요할 수 있음에도 어느 영역에선 좀 덜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이를 추구하든지 이는 자유의 영역이기도 하며 때로는 어느 정도 질서를 위한 범주로서 제한이 유효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오순절에 모여 기도에 전념하던 당시 “ …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 (행 2:1-13) 

주의 가르침을 따라 모인 사람들의 그 이적의 체험은 곧 믿지 않은 자들을 향하여 이적을 넘어 믿음을 더하게 하심으로 가늠합니다. 당시 제자들의 무리가 그들의 평시 언어로 기도를 할 때, 하늘로 놀라운 성령의 임재가 드러나며 그 기도의 언어가 외부에 있던 수 많은 다른 국가로부터 온 사람들이 이를 알아 들었다고 기록된 바와 같이, 방언 곧 다른 언어의 영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신 사건은 궁극적으로 전도에 관함이며 무지한 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심인 것이라고 여깁니다. 믿지 않은 누군가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심이 곧 방언이라는 모습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나아가 이는 각자의 영역에 있어 행하는 일을 통해 믿지 않은 누군가에게 하나님과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오심의 이유에 대해 알게 하는 도구로 행하는 그 모든 일은 곧 방언과 같은 존재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전 10:31) 하심과 같이 궁극적으로 믿지 않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존재하심과 복음에 대해 올바르게 전달되게 하심을 이루는 그 모든 행위는 그러므로 성경적인 적절한 모습이라고 보입니다.

 

성장과 함께 형성된 가치관과 인생이라는 나그네의 기간 가운데 지속적으로 얻어가는 무엇에 관한 차이에 대해 인식하며, 갈등을 넘어 서로간에 알맞게 행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언급한 바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는가 싶음을 넘어, 누군가에는 적절한 방안이 될 내용을 통해, 좋음과 좋지 않음이 혼재하게 되는 가운데 피조물인 물과 관련된 모습을 다루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ep 2022